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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1 - 할머니
    텅빈... 와인통/┏ 잡담¡마음가는.. 2020. 8. 24. 17:58

    큰 길가에서 골목길을 끼고 들어오면 큰 버드나무가 위로 뻗은 옅은 색의 두꺼운 나무 대문이 보인다. 
    대부분 철문으로 대문을 하던 시절,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나무 대문 집으로 통했었다.
    자다 일어나서 잠옷 차림으로 이웃집에 놀러 가도 흉이 아니었던 유년시절까지의 기억을 함께한 그 집에서 우리 가족은 늘 대가족이었다. 
    군복을 입은 막내 삼촌이 있었던 때가 있었고, 데이트까지 쫓아다녔던, 시집가기 전의 이모가 있던 때도 있었다. 
    그리고 수시로 몇 주, 혹은 몇 달씩 와 계시던 친할머니가 계셨다. 

    작은 체구의 할머니는 늘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가늘고 긴 머리를 정성껏 빗어 쪽진 머리를 하시고 불편한 몸으로도 흐트러진 모습은 보이지 않으시려 애썼던 분이셨다. 
    내게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아침 일찍 빗질하시던 할머니, 그리고 '애미나이가......' 로 시작하는 잔소리다. 

    어려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던 할머니들. 
    무조건적인 오빠에 대한 애정과 당연한 듯이 내게도 오빠를 우선적으로 강요하실 때마다 나는 엄마한테 가서 할머니들은 왜 내 방에 계시면서 오빠만 이뻐하냐고, 내 편들어달라는 듯이 울기도 많이 울었었다. 
    물론 그 시대의 할머니들은 다 그랬다지만, 어린 내게는 참 서럽고 이해하기도 힘들었었다. 

    할머니는 내가 좀 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시지 않고 중학교 1학년 여름, 돌아가셨다. 
    살아계신 동안은 참 외로운 분이셨었는데 가시는 길은 외롭지 않으셨을 거라고 생각될 만큼 배웅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꽤 더운 여름날에 작은 집에서 장례식이 치러졌었고 할머니가 계신 방에 엄마, 고모, 큰어머니, 작은어머니가 소복을 입고 앉아계시던 모습, 앞마당에 자리 잡았던 천막들과 조문객들에 대한 기억, 그것이 내가 처음 경험한 죽음이었다. 
    난, 할머니인데도, 무서워서 정작 할머니가 계셨던 방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할머니를 보내드렸다. 

    근엄했던 친할머니에게 애틋한 기억이 많지 않은 반면 외할머니는 생각하면 죄송하고 보고 싶다. 
    같이 살았던 기간을 계산해보면 친할머니 하고 더 많은 시간들을 한집에서 보냈지만, 받은 사랑에 비례하는 그리움인가 보다. 

    몇 달씩 집에 계시던 친할머니 하고 다르게 외할머니는 길어야 사나흘씩만 다녀가셨었고, 따지고 보면 아들 선호 사상은 외할머니가 훨씬 지독하셔서 상처도 더 많이 주셨었지만 손녀 중에 첫째라고 많이 이뻐해주시기도 했다. 
    애기 때는 당신 딸, 엄마를 힘들게 한다고 못마땅해하셨다는데 그건 내가 기악 못하는 이야기. 
    생일 때면 양말이나 털모자, 장갑 같은 선물을 챙겨주셨었고 방학 때면 큰 삼촌네로, 이모네로 내 손을 꼭 쥐고 데리고 다녀주셨던 기억에 딸로 태어나 받은 서러움은 지워졌나 보다. 

    겨울방학이 끝나갈 때 즈음에는 앞마당 김칫독에서 꺼낸 김치로 만두를 만들어주셨었고 여름에는 그 김칫독에 단술을 담가 두셨던 외할머니.
    나훈아가 좋다고 하셨던 할머니. 

    신문에서 박종철의 죽음을 얘기하던 어느 날, 이모할머니 댁에 다니러 가셨던 할머니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같이 계시던 세 분 중 혼자 살아남으셨지만 후유증으로 치매가 왔었다. 단단한 바위 같던 할머니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했다. 
    그리고 반년 후 우리 가족은 준비해왔던 이주 문제로 많이 불안정한 할머니와 작별을 해야 했다. 할머니 살아계실 동안에 다시 뵐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었던 탓이었을까, 할머니는 공항 바닥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리시고야 말았다. 

    그리고 몇 년 후, 할머니의 돌아가셨다는 국제전화를 받고 엄마는 급히 비행기를 타셨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엄마를 다시 보지 못하신 채로 떠나셨다. 

    어느덧 내가 그때 엄마의 나이를 건너뛰어버린지 한참 되었고 엄마 역시 그러하시다. 
    그리고 지금 내 얼굴에서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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